트루스토리
인기검색어 : 박근혜, 이재용
비평과분석심층
[특집] 뉴 아메리칸 시네마의 후퇴[창간 1주년 기획] 세계 영화 100년을 분석해보다
송은정 기자  |  syj@true-story.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3.10.23  14:20:48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오손 웰즈에서 뉴 아메리칸 시네마까지-에필로그

[트루스토리] 송은정 기자 =  1970년대 중반, 사회운동이 약화되면서 뉴 아메리칸 시네마의 열기도 식어갔다. 자유주의운동은 제도적인 결실로 맺어지지 못한 채 대중들에게 일종의 패배감만 남기고 사라지고 있었다.

대중들의 이러한 좌절과 상실감은 ‘차이나타운(1974)’과 ‘형사 서피코’와 같은 변형된 탐정 장르에서 쉽게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베트남전과 워터케이트 사건 이후 사회에 만연해 있던 회의주의와 비관주의는 이러한 대중 심리를 이용하는데 능통한 보수주의자들에게 회생활 기회를 부여했고, 결국 1980년대에는 악명높은 레이건주의를 맞이하게 된다. 대부분의 영화들은 관습적으로 전통 장르로 복귀하고, 자기 부정적인 면모는 현저히 후퇴한다.

1990년대 들어서 영화의 자기 부정은 다른 단계로 들어섰다. 그것은 포스트모더니즘 영화로, 혹은 바흐친 식의 다성적인 영화로, 아니면 다른 이름으로 변환되었다. 돌아보면, 영화사는 매 시기가 ‘전환의 시기’가 아닌 적이 없었다. 영화사 100년사가 진행되는 동안 더러는 폭발적이고 당당한 발전의 궤적으로, 또는 음울한 퇴보의 흔적으로 영화는 존재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영화의 발전은 부정해야 할 적을 부단히 찾아나선 자의 노고에 의해 이루어져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점이다. 미래의 적은 여전히 헐리우드일 수도 있고 의외로 지금은 화석화 된, 이전의 진보적인 이념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한 시기의 모럴이 신화로 고착화되기 전에 그것을 다시금 부정의 대상으로 삼고 극복해 나가려는 움직임이다. 그를 위해서 영화는 앞으로도 끊임없는 자기 부정의 고통을 겪어내야만 할 것이다. 그 대결이 어떤 모습으로 진행될 것인지 자못 궁금해진다.

< 저작권자 © 트루스토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관련기사]

송은정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대방로 68길 21, 9층(여의도동, 정곡빌딩) | Tel : 070-7803-2562 | 팩스 02-761-6163
상호명 : (주)트루스토리 |  대표이사·발행인 : 최봉석 |  편집인·편집국장: 조재옥 | 청소년보호관리책임자 : 최봉석
인터넷 신문사업 등록번호 :  서울, 아 02774(등록일:2012년09월18일)
Copyright © 2012 트루스토리. All rights reserved. mail to cbs@true-story.co.kr
모든 기사의 소유권은 본사가 보유하며 발행인의 허가 없이는 기사나 사진의 무단 전재, 복사를 금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